악은 어떻게 존재하고 점화되는가. 이 책을 통해 작가 정유정이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다. 지금까지 ‘악’에 대한 시선을 집요하게 유지해온 작가는 이번 신작 [종의 기원]에서는 인간이 가진 ‘악’의 근원, 심연을 파헤치려 노력한다. 소설을 통해 작가는 악이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님을 말한다. 끔찍한 것은 밖이 아니라 인간의 안에 도사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문학이 인간의 근원을 파헤치고, 다양한 인간상을 구현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면, <종의 기원> 속 주인공 유진은 새로운 인간상을 독자들에게 제시해줄 것이다.
정유정
장편소설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로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을, [내 심장을 쏴라]로 제5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7년의 밤]과 [28]은 주요 언론과 서점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며 큰 화제를 모았고, 프랑스, 독일, 중국, 대만, 베트남 등 해외 여러 나라에서 번역 출판되면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외에도 에세이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을 출간하였다.
비로소 뭐가 잘못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경험해보지 않았던 것, 스스로 부른 재앙, 발작전구증세였다. 운명은 제 할 일을 잊는 법이 없다. 한쪽 눈을 감아줄 때도 있겠지만 그건 한 번 정도일 것이다. 올 것은 결국 오고, 벌어질 일은 끝내 벌어진다. 불시에 형을 집행하듯, 운명이 내게 자객을 보낸 것이었다. 그것도 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p.139)
내 몸은 소리를 죽이기 시작했다. 숨 쉬듯 욱신대던 뒤통수가 평온을 되찾았다. 숨소리는 목 밑으로 잦아들고, 갈비뼈 안에선 심장이 느리게 뛰었다. 배 속에서 공처럼 구르던 긴장이 사라졌다. 오감이 날을 세웠다. 몇 미터 거리가 있는데도, 겁먹은 것의 축축하고 거친 숨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세상이 엎드리는 기분이었다. 모든 것들이 길을 열고 대기하는 느낌이었다.
(p.283)
프롤로그
1부 어둠 속의 부름
2부 나는 누구일까
3부 포식자
4부 종의 기원
에필로그
작가의 말